베트남 파병
베트남 파병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국군을 해외파병한 것은 1964~1973년 베트난 전쟁때이다.
1954년 7월 21일 제네바 협정 조인으로 베트남은 북위 17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하여 남북이 양분되었다.
이후 남북 베트남은 대치 상황 아래 놓이게 되었는데, 북부 월맹의 무력 침공으로 월남전이 시작되었다.
1964년 본격적으로 월남전에 개입한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우방국에 월남전 지원을 호소하였다. 이에 한국 정부는 1964년 9월 11일 의무 요원과 태권도 교관 요원을 파견하였다.
뒤이어 이 해 12월 28일 브라운 주한 미국 대사가 박정희 대통령을 방문하여 한국군 증파를 요청하였다. 이에 1965년부터 전투부대를 파병하기 시작, 1973년 철군할 때까지 8년 5개월 동안 월남전에 참전한 인원은 32만여 명에 달한다.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하였는데, 베트남전 파병은 한국군 사상 처음으로 해외에 군대를 내보낸 것이었다.
한편 베트남전에 전투부대를 파병하면서 우리 정부는 미국측과 파병에 대한 보상 조치로 '브라운 각서'를 맺었으며, 베트남전 파병은 경제적으로는 '브라운 각서'와 '월남 특수'를 통한 고용 증대와 경제 성장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미국의 권유로 시작된 베트남전 참전으로 전사 5000여명, 부상 1만5000여명의 큰 희생을 치뤘으며, 또 다수의 서방 국가들로부터 비난도 받았다.
특히 베트남전에 참전한 장병과 근로자들이 남기고 온 현지인 2세(속칭 '라이따이한') 문제와 고엽제 피해 등은 아직도 후유증으로 상존해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