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채식 이야기
역사속의 채식 이야기
건강과 환경을 위한 날씬한 선택
12첩 반상의 수라상. 산해진미가 모두 올라간다는 화려한 임금님 밥상을 부러워하지말자. 조선왕조실록을 들여다보면 임금들의 식단과 운동에 대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소식’과 ‘채식’을 한 임금이 장수했다는 자명한 결과를 이야기해보자.
83세 장수한 영조 vs 42세 단명한 세종
영조 ‘거친 음식으로 소식했다’
조선의 최장수 왕이었던 영조대왕. 조선시대 임금의 평균 수명이 48세 정도인 것에 비해 83세로 생을 마감했다. 실록에 따르면 영조는 채식 위주의 식사를 했으며, 하루 5번인 수라상을 3번으로 줄였던 소식주의자였다.
내가 일생토록 얇은 옷과 거친 음식을 먹기 때문에 자전께서는 늘 염려를 하셨고, 영빈(사도세자의 생모)도 매양 경계하기를, ‘스스로 먹는 것이 너무 박하니 늙으면 반드시 병이 생길 것이다’고 하였지만, 나는 지금도 병이 없으니 옷과 먹는 것이 후하지 않았던 보람이다.
- 영조실록, 영조 26년 2월 10일
다른 임금과 달리 거친 음식을 즐겼다는 영조의 식습관은 성장 배경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숙종과 미천한 신분으로 알려진 숙빈 최씨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영조는 정통 왕세자 교육을 받지 못했다. 더구나 18세부터 28세까지는 사가에서 생활해 일반 백성들의 식단을 경험했다. 젊은 시절 사가에서의 생활 경험이 채식 위주의 식단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종 ‘고기가 없으면 수라를 들지 못했다’
한글 창제 등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세종은 육식을 즐기는 한편, 늘 크고 작은 질병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卒哭졸곡 : (상을 당한 지 석 달 만에 지내는 제사) 뒤에도 오히려 素膳소선 : (고기나 생선이 들어 있지 않은 반찬)을 하시어 성체가 파리하고 검게 되어, 여러 신하들이 바라보고 놀랍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또 전하께서는 평일에 육식이 아니면 수라를 드시지 못하는 터인데, 이제 소선한 지도 이미 오래되어 병환이 나실까 염려됩니다.
- 세종실록, 세종 4년 9월 21일
육식이 아니면 수라를 들지 못했다는 대목에서 세종이 평소 육식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세종실록에 나타난 세종의 질환 관련 대목은 모두 50건에 이른다. 20대부터 두통과 이질, 30대 중반에는 풍병과 종기로 고생했다. 태종 때 세자로 책봉되어 궁궐생활을 한 그는 평생 화려한 수라상을 즐겼다.
최장수 왕 영조가 궁중요리보다 소박한 밥상을 즐겼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온갖 진미를 올렸던 수라상이나 부족함 없이 차린 현대인들의 밥상의 문제점은 결국 ‘과잉’이다. 섬유질과 미네랄이 많이 들어 있는 ‘거친’ 음식을 즐기고 고기 대신 ‘채소’ 중심의 밥상을 구성하는 것. 웰빙과 에코를 외치는 21세기의 우리들이 주목해야 하는 건강 키워드인 셈이다.
출처 : 여성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