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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부비만, 중년의 암살범 뱃살의 경고

조약돌의꿈 2009. 4. 19. 07:37

복부비만, 중년의 암살범 뱃살의 경고
내장지방은 몸에 좋은 물질 분비 막고 혈전만 대량 생산
혈관벽 두꺼워져 고혈압·동맥경화·협심증 주범으로
운동·식이요법이 최선… 아스피린 요법도 도움 줘


전형적인 복부비만
(복부CT사진 - 녹색은 내장지방, 청색은 피하지방)

한 기업의 부장인 허모(47)씨는 지난해 가을 받은 건강검진 결과 지방간과 고지혈증, 고혈당 진단을 받았다. 공복 상태에서 총 콜레스테롤이 220㎎/㎗, 혈당은 120㎎/㎗였다. 그는 키 168㎝에 체중 77㎏이며, 바지의 허리둘레는 91.4㎝(36인치)이다. 건강검진 결과를 상담해준 의사는 최씨에게 “이대로 가면 당뇨병 등에 걸릴 위험이 높을 뿐 아니라 심혈관계 질환 가능성도 높다. 당장 체중 조절을 시작하라”고 권했다.

그로부터 3개월간 피나는 노력 끝에 최씨의 최근 체중은 70㎏으로 줄었고, 허리둘레도 81.3㎝(32인치)까지 내려왔다.

며칠 전 병원에서 혈압을 재고 혈액검사를 했는데 공복 혈당이 88㎎/㎗로 나왔다. 현재 당뇨병 판정의 기준은 공복 상태에서 100㎎/㎗이다. 101~125㎎/㎗는 ‘공복혈당 장애’, 식후 2시간 혈당이 140~200㎎/㎗인 경우는 ‘내당능 장애’라고 한다. 공복혈당 장애와 내당능 장애를 합쳐서 ‘당뇨 전 단계’라고 한다. 이 상태에서 체중조절, 식이요법 등을 하지 않으면 당뇨병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지방간도 없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최씨의 총 콜레스테롤은 210㎎/㎗로 3개월 전보다 약간 줄긴 했지만 여전히 기준(200㎎/㎗)을 초과하고 있다.

최씨가 살을 빼기만 했는데 혈당이 떨어지고 지방간이 사라졌으며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진 이유가 뭘까? 그 비밀은 바로 최씨의 뱃속에 들어 있는 지방, 즉 ‘내장지방(內臟脂肪)’이 쥐고 있다.

뱃살을 ‘복부비만’이라고 한다. 40대 이후 팔·다리 등 몸의 다른 부위에는 특별히 살이 찌지 않으면서 뱃살만 찌는 경우를 흔히 본다. 이런 뱃살을 “나잇살이다” “인격이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의사는 복부비만이 중년 건강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라고 지적한다. 연세조홍근내과 조홍근 원장은 “목숨을 노리는 암살자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뱃속에 든 내장지방이 당신을 위협한다”고 말했다. 왜 그런가?

내장지방
배 둘레 남성 90cm, 여성 80cm 이상이면 의심해야


수술 등을 위해 복부를 절개하면 장기(臟器) 사이사이에 노란색 기름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닭 잡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금방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복부비만이 심한 사람의 배를 열어보면 샛노란 기름이 장기 사이에 가득 차 있다.

복부에 낀 지방이 위험한 이유는 뭘까?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대사증후군(metabolic syndrome)’이다. 정확히는 ‘대사이상증후군’ 또는 ‘지질대사이상증후군’으로 번역한다. 인체가 지방을 분해, 저장, 사용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대사증후군은 진단 기준이 있다. 우선 복부비만(배꼽을 기준으로 남성 90㎝, 여성 80㎝ 이상)이다. 아울러 고지혈증(총 콜레스테롤 200㎎/㎗ 이상), 고혈압(120/80㎜Hg 이상), 고혈당(공복혈당 기준 100㎎/㎗ 이상) 등 3가지 중에서 2개 이상 해당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허리둘레 91㎝인 남성이 총 콜레스테롤이 230㎎/㎗, 공복혈당이 130㎎/㎗이면 대사증후군으로 진단한다. 복부비만이 있으면서 고지혈증, 고혈압, 고혈당 등 네 가지가 모두 있으면 ‘죽음의 4중주’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대사증후군은 심장병에의 ‘초대장’
혈관 탄력 떨어지면서 치명적 질환으로 악화


복부비만(왼쪽)과 이상적인 복부

지방이 늘면 체중이 많이 나가고 몸이 무거워진다. 이 정도로 내장지방을 ‘암살범’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다. 내장지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교활하고 악랄하다. 내장지방은 섭취한 영양분을 태우거나 모으는 대사 작용에 깊숙이 관여한다. 내장지방 세포 안에서는 중성지방의 분해와 합성이 매우 활발하게 일어난다. 내장지방에서는 몸에 좋은 물질을 분비하기도 한다. 바로 ‘아디포넥틴’이란 물질이다. 이는 혈관 벽에 작용해 동맥경화증을 예방하고 당(糖) 대사를 원활하게 하며 혈관을 확장해 고혈압을 막아주기도 한다. 단 내장지방의 양이 적절할 때 얘기다.

내장지방이 과도하게 늘어나면 ‘아디포넥틴’과 같이 몸에 좋은 물질의 분비는 확 줄어드는 대신 혈전(피떡)을 만들거나 혈압을 상승시키는 물질을 대거 만들어낸다. 이 물질들이 혈관을 타고 온몸을 돌면서 고지혈증, 고혈압, 고혈당 등을 불러온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복부에 차 있던 내장지방은 간으로 옮겨져 중성지방으로 합성된 뒤 지단백이란 캡슐에 싸여 혈액 속으로 들어간다. 내장지방이 적절한 정도로 있으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내장지방이 너무 많으면 이 지단백이 잘 분해되지 않고 중성지방을 함유한 채로 혈관 벽에 들러붙는다. 이를 제거해주는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HDL)은 제대로 합성되지 않고 중성지방은 계속 늘어나 혈관벽이 점점 두꺼워진다. 더욱이 손상된 혈관 벽을 원상회복시켜 주는 아디포넥틴의 분비는 감소해 혈관의 탄력성은 더 떨어진다. 이것이 동맥경화증이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관상동맥)에 동맥경화증이 나타나면 협심증, 심근경색증 등 치명적인 질환으로 진행한다.

2007년 통계청의 한국인 사망 원인 통계에 따르면 사망 원인은 1위 암(27%)에 이어 뇌혈관 질환(12.3%), 심장질환(8.3%), 당뇨병(4.8%) 순이었다. 뇌·심혈관 질환은 모두 혈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뇨병, 특히 제2형 당뇨병의 원인은 대부분 대사증후군과 관련이 있다.
결국 암을 제외할 때 대사증후군만 예방한다면 사망 원인의 2~4위(총 25.4%) 질환으로 사망할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장지방을 암살범으로 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복부비만 정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은 몸매 관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암살범을 몰아내는 비법
아스피린 복용 후 심근경색 44%, 뇌졸중 48% 감소

복부비만을 줄이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비법은 없으나 해결책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규칙적인 운동과 식이요법, 행동요법이다. 짠 음식이나 기름기 많은 음식을 피하고 섬유질이 많은 해조류나 신선한 채소, 과일 섭취도 중요하다. 하루 20분 이상 운동도 기본이다.

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센터 지재환 교수는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내장지방이 많으며 여성은 폐경기 이후에 내장지방이 많이 증가한다”며 “현대 의학에서 내장지방의 가장 큰 원인으로 운동부족을 꼽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설탕 등 단순당질의 과도한 섭취, 음주, 흡연 등도 내장지방 증가의 원인으로 꼽힌다.

적절한 약물 복용도 권장된다. 세계 35개국의 심근경색증과 뇌졸중 위험이 높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연구 결과를 보면 매일 100㎎의 저용량 아스피린(‘아스피린 프로텍트’)를 투여한 그룹에서 심근경색증이 44%, 뇌졸중은 48%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심혈관 질환 예방약으로 저용량 아스피린 복용을 권하고 있다. 위에 주는 부담을 덜고 장에서 용해될 수 있도록 특수 코팅한 제품이다.


: 임형균 헬스조선 기자 

출처 : 위클리조선 [199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