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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한 바닷가 언덕 작은 오두막 사립문에 기대어 갈매기 은빛 날개 위로 낙조가 물드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야간열차에 무작정 몸을 싣는다. 항구가 있는 종착역에 도착하여 드럼통 장작불에 추위를 녹이며 여명이 밝기도 전에 아침을 여는 괭이갈매기 울음소리를 듣는다. 해풍에 실려온 파도소리, 갯내음과 어우러진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그리운 추억들로 가슴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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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일암 일출./ 어부의 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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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해맞이 명소 중 으뜸이라고 하는 여수 돌산 향일암을 찾아 일출맞이를 하고 유자향 가득한 금오도 대부산을 찾았다. 향일암(向日庵)은 서기 644년 신라 선덕여왕 13년 원효대사가 원통암이란 이름으로 창건한 암자다. 남해의 수평선에서 솟아오르는 해돋이 광경이 너무 아름다워 조선 숙종 41년(1715년) 인목대사가 향일암이라 하였다. 해안가 수직절벽 위 기암절벽 아래에 절묘하게 자리했다. 울창한 동백나무 등 아열대 식물들과 잘 조화되어 이 지역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 낙산사의 홍연암, 남해 금산 보리암, 강화도 보문암과 함께 한국의 4대 관음기도처 중 하나다.
이른 새벽 향일암 돌계단을 오른다. 아직은 어둠이 암봉을 감싸고 있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지만, 향일암 법당에서는 스님 독경소리가 새벽을 일깨우고 솜바지를 입은 행자승은 법당 앞 뜨락에서 간밤에 흩어진 낙엽을 쓸고 있다. 일출을 보기 위해 헤드랜턴을 켜고 계단으로 된 등로를 따라 일출촬영에 좋은 곳을 탐색하며 금오산 정상으로 오른다.
표지석이 선 정상에 오르니 얼굴을 스치는 새벽 바닷바람이 매우 차갑다. 점점 여명이 밝아오고 어부들의 통통선은 물살을 가르며 움직임이 부산해진다.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일출을 보려고 한참을 기다리던 곽영자씨(여수피아노학원 원장)는 나이 마흔이 넘어 난생 처음 보는 일출이라며 조바심을 참지 못한다.
산릉처럼 일어선 거대한 구름이 드디어 산불처럼 타오른다. 섬광을 발하는 태양은 천지창조의 그 날처럼 붉다. 희망이 없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듯 태양은 떠오른다. 붉은 태양이 동백꽃잎을 물들였는가. 붉은 동백꽃잎이 태양을 물들였는가. 참으로 천하제일 일출의 기관이다. 이곳 향일암 동백꽃잎 사이로 떠오른 일출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러한 무아지경의 황홀경을 볼 수 있겠는가. 매년 12월31일~1월1일에는 향일암 일출제가 열려 관광객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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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구미 어촌./ 암릉에서 바라본 천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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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터널과 절경 조망처 적절히 조화
9시20분 돌산 신기 선착장에서 승용차에 탄 채 금오도행 여객선에 올랐고, 30분 뒤 금오도 여천 마을 선착장에 도착했다. 여수여객터미널에서는 1시간이 훨씬 더 걸린다.
금오도는 여수시 남면에 속한 섬으로, 여수만 남서쪽에 있다. 금오열도는 안도를 비롯해 연도, 소리도, 화태도, 대두라도, 소두라도, 나발도, 대소횡간도, 금오도, 연도 등 37개의 유·무인도로 구성되어 있다. 섬이 자라를 닮았다 하여 금오도(金鰲島)라 하는 이 섬의 최고봉은 서쪽에 솟아 있는 대부산(382m)이다. 그밖에도 동쪽의 옥녀봉(261m)을 비롯, 200m의 산들이 대부분이지만, 너럭바위와 숲길이 조화를 이루어 감칠맛 나는 섬 산행의 묘미가 있다. 해안은 드나듦이 심하며, 곳곳에 기암들이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어 절경을 이루며, 서쪽은 반도처럼 바다로 돌출해 있다.
여천 마을 부두 근처는 작은 어촌으로 식품가게가 하나 있을 뿐이다. 남면사무소 근처로 가 남도의 인정이 넘치는 식당에서 속풀이를 하고 곧 바로 택시를 불러 함구미로 이동하였다. 이곳 우학리 선착장에서는 여수여객터미널로 직접 가는 배편이 있기 때문에 승용차는 이곳에 두고 반대편에서 산행을 시작해 넘어오기로 한 것이다.
함구미 등산로 입구엔 수많은 표지리본과 더불어 자세한 등산로 안내판이 서 있다. 함구미~대부산~문바위~칼이봉~느진목~옥녀봉~검바위(우학리쪽)까지 11.3km에 4시간30분 소요된다고 표기돼 있다. 권오철씨(미래기획 대표)는 도깨비산우회 리본을 매달며 다음부터는 그림산행 리본도 만들어 달자고 한다.
함구미는 면사무소가 있는 우학 마을 북서쪽 11km 떨어진 곳이다. 함구미에서 바다를 끼고 돌면 이 섬에 맨 처음 사람이 살았다는 두포 마을이 나오는데, 두포 마을로 가는 길은 원시상태의 식생대를 보존하려고 해안도로를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해안 경치 또한 빼어나다.
- 등산로로 접어들어 조금 오르니 여기저기 작은 텃밭에 파란 배추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고, 양지쪽 언덕배기에는 파란 풀잎들이 돋아 있다. 12월 중순인데도 강원도 지방과는 사뭇 달라 겨울을 느끼기에는 이른 것 같다. 이곳 초겨울 금오도에는 떠나지 않은 가을과 미리 찾아온 이른 봄이 함께 공존한다.
집터에는 팔뚝만큼 자란 녹색 담쟁이넝쿨이 돌담을 휘감고 있다. 지금은 폐허가 된 집터 여기저기에 고목이 된 유자나무만 멀쑥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인 없는 나무에 매달려 탐스럽게 익은 유자들은 아직도 빛깔이 곱다. 옛 마을터를 벗어나 예전에 뙈기밭이었을 억새밭을 지나니 잡목지대가 나온다. 어린 동백나무 새싹들과 야생 춘란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실란, 풍란, 춘란 자생지였으나 지금은 풍란은 찾아보기 힘들고 춘란만 흔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가파른 소사목지대를 오르니 첫 번째 조망처가 나온다. 고흥 나로도와 팔영산 풍경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느껴진다. 함구미쪽을 바라보니 아담한 어촌은 참으로 평온하고 그림 같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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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바위에서 다도해 조망./ 대유 마을 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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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마저 세상을 뜨면 저 할미섬도 무인도가 되겠지
소사나무 숲길의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소리와 파도소리, 그리고 새소리가 어우러져 영혼을 맑게 한다. 대부산의 산릉길은 온통 소사나무터널을 이루고 있어 여름엔 불어오는 해풍을 맞으며 산림욕하기에 안성맞춤이겠다. 낙엽이 쌓여 땅이 보이지 않고 높낮이도 없는 그런 능선 숲길을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대부산 정상안내판이 지도와 함께 세워져 있다. 잡목이 우거져 주위 조망이 좋지 않다. 특이한 암봉도 없다. 또한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산행하는 사람들을 전혀 만나지 못했다.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한가로운 산이다.
함구미에서 두포에 이르는 산 전체를 대부산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숲이 울창하고 사슴들이 떼 지어 살아 조선 고종 때 명성황후는 이 섬을 사슴목장으로 지정하여 민간인 출입과 벌채를 금하고 황장봉산으로 삼았다. 그 후1885년 봉산이 해제되면서 나라에서 민간에게 대부를 해준 산이라고 하여 대부산이 되었다.
대부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서니 너럭바위에 전망 좋은 조망처가 나온다. 이곳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이상년씨(런닝라이프 이사)가 저기가 장흥 천관산이라며 멀리 바다 건너 보이는 산을 손짓으로 가리킨다. 청옥빛 바다를 가르는 통통선의 하얀 물거품, 뱃전 위를 맴도는 괭이갈매기의 날렵한 몸놀림, 점점이 떠있는 섬들에서 나는 시어를 느낀다. 어쩜 섬 산행의 멋이란 이런 데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태백도 이곳에 서면 비경에 감탄하여 싯귀를 잃고 말 것이다.
소나무를 흔드는 바람소리를 가슴으로 들으며 조금 내려서서 너덜지대를 통과하니 이곳 또한 조망이 시원스런 너럭바위다. 주민들의 노력으로 잘 정리된 등산로는 가끔 바위를 붙잡고 올라야 하는 곳도 있지만, 너럭바위와 숲길이 적당히 조화를 이루어 섬 산행의 멋스러움을 한층 더해준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조망 좋은 암릉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문바위다. 문바위에 올라서니 우리가 아침에 내렸던 여천여객터미널이 발아래다. 끝없는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로 뻗어나간 금오도 산자락은 쪽빛 바다 위를 유영하다 용궁을 찾아 들어가는 자라잔등처럼 느껴진다.
금오도는 소나무가 많아 멀리서는 섬이 검게 보인다고 하여 거무섬(검은섬)이라고 불렀다. 금오도의 황장목으로 좌수영인 여수 진남관 68개 기둥을 세웠으며, 경북궁 복원 때도 금오도 황장목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지금은 솔고지(송고)와 두모리 직포 해송림이 약간 남아 있을 뿐이라고 한다.
칼이봉에서 느진목으로 내려서니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계절을 느끼게 된다. 아열대 상록활엽수와 전나무가 어우러져 밀림지대 같다. 그렇게 숲이 우거진 곳에 옛날 집터의 흔적인 이끼 낀 돌담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옥녀봉까지는 아직 2.7km가 남았다. 시간을 보니 벌써 4시다. 계속 가면 여수여객터미널로 떠나는 5시 마지막 배를 탈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서둘러 대유 마을로 내려선다. 유독 유자나무가 많은 이 마을의 집들은 추녀 끝까지 높게 쌓아올린 돌담이 인상적이다. 건너편 산비탈 교회당의 십자가는 저녁노을에 더욱 붉다. 이곳 남면은 37개의 섬 중에 유인도가 13개라고 하는데, 젊은 사람은 점점 뭍으로 떠나고 있어, 늙은 부부가 살던 섬은 그들이 세상을 떠나면 무인도가 될 거라고 한다. 현재 늙은 노부부 둘이 살고 있다는 할미섬에 붉은 노을이 따사롭게 비치고 있다. 머지않아 저 할미섬도 무인도가 되겠지.
글 곽원주 blog.empas.com/kwonjoo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