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악

타향살이/ 고복수

조약돌의꿈 2014. 3. 24. 10:07

https://blog.kakaocdn.net/dn/c78zna/btqXHfZE6vE/OYauOF97wkhgVhykQJOOj1/%EA%B3%A0%EB%B3%B5%EC%88%98_05_%ED%83%80%ED%96%A5%EC%82%B4%EC%9D%B4_192k.mp3?attach=1&knm=tfile.mp3

 


고향을 알게 한 노래-'타향살이'
61세로 1972년 2월 10일, 멀고 먼 타향 서울에서 별세하였다.
노래로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그를 기려 
'고복수 가요제(1987년 울산예총)'가 개최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타향살이 몇해던가 손 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타향살이'는 울산출신의 가수 고복수 불러 유명해진 노래다.
  일제하이던 1912년 울산군 하상면 서리, 
현 중구 병영동에서 출생한 고복수는 지금의 병영 초등학교인 
옛 일신보통학교에서 4학년까지를 다니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학교를 마치고 성장을 하였다.
  1932년 신인가수 선발대회에서 3위로 입상한 그는 이듬해 
오케이 레코드사에서 취입한 '타향살이'와 '사막의 한'이 인기를 누려 
단번에 레코드 가수로 성공한 첫 케이스의 유명 인기가수가 되었다.
'세동무(1928)', '사막의 한(1929)', '타향살이(1933)', 
'짝사랑(1937)', 등 그의 노래는 지금?자주 불리지만 고향과 
나라를 잃고 타향을 전전하던 당시의 상황에서 '타향살이'는 
그야말로 동포의 가슴을 적시며 두고두고 고향을 돌아보고 
눈물짓게 하던 노래였다.
1934년 가을, 가수생활 25년을 마감하는 은퇴공연을 하기까지 
후배가수 양성에도 힘써 우리나라 최초의 가요학원인 
"동화예술대학원"을 개설하여 이미자, 안정애 등의 인기가수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년에
청춘만 늙~~~어
부평같은 이 내 신~세
혼자도 기막혀서
창문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 봄도 푸르련만
호들기를 꺾어 불던
그 때는 옛~~~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