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페 타르티니(Giuseppe Tartini)는 1692년, 이탈리아 피란(Piran, 지금은 슬로베니아의 영토)에서 태어난 작곡가이자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한 인물이다. 그의 양친은 아들이 프란치스코 수도원의 성직자가 되기를 희망하고 기초적인 음악교육을 시켰다. 그러나 대학(파두아)에 진학해서는 법률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생 때는 펜싱에서 비범한 재주가 있었다고 한다. 1710년, 아버지가 별세하자 타르티니는 엘리자베타 프레마졸레(Elisabetta Premazore)라는 아가씨와 결혼했다. 이 아가씨는 그 출신이 비천하고 나이도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부모들이 결혼을 극구 반대했던 터 였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기다렸다는 듯 덜컥 결혼을 감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아가씨는 당시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코르나로(Cornaro) 추기경이 애지중지하고 있던 소녀였고, 그녀가 타르티니와 결혼하자 대노한 추기경은 즉각 타르티니를 납치해서 다른 곳으로 보낼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타르티니는 아시시에 있는 성 프란시스 수도원으로 줄행랑을 친다.
수도원에서 지내기 시작하면서 타르티니는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716년엔 당시의 대가였던 프란체스코 마리아 베라치니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을 듣고 크게 감명 받고 구가 구사한 테크닉을 연마하기 위해서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두문불출한 가운데 오로지 바이올린 연습에만 매달렸다는 이야기도 이 무렵의 것이다.
타르티니의 테크닉이 놀랄만큼 향상되자 1721년 파두아의 ‘일 싼토 교회’의 카펠마이스터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5년 뒤, 1726년부터 바이올린 학교를 열었고 1750년에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많은 제자들을 이 학교를 통해서 길러내고 바이올린 연주법에 관한 많은 저술도 남겼다. 그의 제자들 가운데는 나르디니(Nardini), 파스콸리노(Pasqualino), 비니(Bini) 같은 뛰어난 연주자들이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 트릴’은 바이올린 연주 테크닉 가운데 더블 스탑(double stop)등 고난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타르티니는 그 자신이 성직자였으면서도 4성, 5성, 8성부를 위한 '미제레레( Miserere for four, five, and eight voices)' 이외에 어떤 교회음악도 작곡하지 않았다. 거의 소나타와 협주곡 등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들만을 썼다. 심지어는 이탈리아 작곡가라면 누구나 손을 대는 오페라도 쓰지 않았다. 게다가 악보에다 언제 그 곡을 썼는지 전혀 기록하지 않아서 서지학자들의 애를 썩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나마 오늘날 그의 작품들이 이 정도의 체계를 갖추고 정리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도우니아스(Dounias)와 브라이너드(Brainard), 이 두 학자들의 노고의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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