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여름에 먹는 굴? 꿀처럼 달콤한 바위굴

조약돌의꿈 2010. 8. 2. 08:46

여름에 먹는 굴? 꿀처럼 달콤한 바위굴!
여름이 제철인 바위굴

경북 영덕이 고향인 이에게 (처음 들을 때만 해도) 희한한 얘기를 들었다. "여름에 먹는 굴이 있다"는 것이다. "이름도 '여름굴'이라고 하죠. 달다고 '꿀'이라고 불렀던 것 같고."

굴은 겨울이 제철이고 여름에는 되도록 먹지 말라는 것이 상식. 영어권에서는 이름에 'R'이 들어가지 않는 달(May·5월, June·6월, July·7월, August·8월)에는 굴을 먹지 말라는 말까지 있지 않던가? 패류·갑각류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국립수산과학원 남해특성화연구센터 신윤경 연구원이 상냥하게 질문에 답해줬다.

 

―여름이 제철인 굴이 있나요?
"흔치는 않지만 있습니다. 남해와 동해 일부에서 납니다. 정식 명칭은 '바위굴'이라고 합니다. 주로 먹는 참굴과 종이 다릅니다."

―그럼 굴 비슷하지만 굴은 아니란 건가요?

"바위굴도 굴입니다. 성은 같은데 이름이 다른 것과 마찬가집니다."

―굴을 여름에 먹어도 됩니까? 여름에는 산란기라 독성을 품고 있어서 위험하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R' 들어가지 않는 달에 굴 먹지 말란 건 근거 없는 말입니다. 참굴이 여름에 산란기를 맞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먹어서 위험하진 않아요. 산란을 위해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 맛이 떨어지고, 생리적으로 약화돼 기생충이나 세균 감염 가능성이 높아질 수는 있지만요."

바위굴. 학명은 'crassostrea nippona'. 우리가 흔히 먹는 참굴의 학명은 'crassostrea gigas'. 산란기는 참굴이 여름(대략 5~9월)인 반면, 바위굴은 가을(대략 9~11월)이다. 참굴이 주로 양식산인 반면, 바위굴은 양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여름에만 난다. 신윤경 연구원은 "참굴은 키우기가 수월하고 1년이면 식용 가능한 크기로 자라지만, 바위굴은 다 자랄 때까지 기간이 오래 걸리는 등 양식에 적합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바위굴은 남해안과 동해안 여기저기서 나지만, 요즘은 경북 울진에서 가장 많이 모인다고 했다. 울진으로 갔다. 울진에서도 바위굴은 쉽게 볼 수 있지는 않았다.

 

울진 사람들에게 물으니 "죽변수산물시장에 가보라"고 했다. 울진 죽변항 바로 앞 수산물시장 안에 횟집 20여 곳이 모여있다. 커다란 플라스틱 대야에 돌덩이처럼 보이는 것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부채꼴에 한쪽은 납작하고 다른 쪽은 불룩하게 튀어나왔다. 남자 어른 주먹보다도 훨씬 컸다. '부산횟집' 사장 김춘자(38)씨는 "이게 바위굴"이라고 했다.

 

"굵죠? 껍데기 깨서 알을 꺼내 보면 더 놀라요. 큰 놈은 알맹이가 진짜 여자 손바닥만 하다니까."

대체 얼마나 크기에. 울진에서는 일반 참굴과 구분하려고 '석화'라고 부른다는 바위굴을 하나 까달라고 부탁했다. 김춘자씨가 공사판에서나 쓸 법한 대형 망치를 들고 나온다. 납작한 쪽이 바닥에 가도록 놓더니 껍데기 오른쪽 모서리를 망치로 사정 없이 내리친다. "이쪽이 입이에요. 워낙 단단하고 입을 열지 않아서 망치 아니면 깔 수가 없어요."

망치질을 여러 차례 반복한 뒤에야 납작한 껍데기가 열렸다. 뽀얀 크림색 굴 알맹이가 통통한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에, 작은 놈이라는데 어린아이 주먹 만하다. 도저히 한 입에 먹을 크기가 아니다. 김씨가 두세 쪽으로 자른 바위굴을 접시에 담아 내오면서 "주로 회로 초고추장 찍어 먹는다"고 했다.

초고추장이나 간장 없이 굴만 먹어봤다. 굴 특유의 미네랄(무기질) 풍미가 덜하다. 굴과 조개를 섞어놓은 듯한 맛. 흔히 '천북굴'이라고 하는 서해안에서 나는 굴과 비슷한데, 감칠맛이 압도적으로 진하다. '꿀'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해될 정도다. 오크통 숙성을 하지 않은 샤블리(Chablis) 같은 샤도네(chardonnay) 와인을 차갑게 식혀서 곁들이면 딱 어울릴 듯하다.

접시에는 굴에서 흘러나온 우윳빛 진액이 흥건하게 고였다. 진짜 우윳빛이다. 우유보다 훨씬 진해서 생크림처럼 보인다. 달고 고소하기도 생크림 뺨친다.

김씨가 바위굴과 멍게를 깻잎에 얹어 내왔다. "초고추장 조금 찍어서 함께 싸먹어 보세요." 상상하지 못한 감칠맛이 입에서 폭발했다. 여름 제철을 맞은 멍게와 바위굴의 미묘하게 다른 단맛이 묘하게 어울리면서 서로 끌어올린다.

바위굴을 처음 알려준 영덕 양반은 "어렸을 때 바위굴에 애호박 따위의 여름 채소를 넣고 물에 끓이다 간장이나 소금으로 간 해서 먹었던 것 같다"고 했다. 바위굴을 집에 가져와 물 붓고 소금으로 간 하고 끓인 다음 쪽파를 조금 넣고 먹어봤다. 조개탕과 굴탕을 섞은 듯한 국물이 시원하다.

바위굴은 9월까지가 제철이다. 6~7월에 많이 나고 요즘은 채취되는 양이 조금 줄었다. 죽변수산물시장 내 횟집에서는 8월 21일 현재 작은 것이 3개 1만원, 큰 것은 1개 4000원 받는다. 부산횟집(054-782-8077) 등 죽변수산물시장 내 횟집 20여 곳 대부분 바위굴을 낸다. 택배도 된다. 택배비 4000원. 주문하면 다음날 도착한다.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