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취미

카이로 이야기

조약돌의꿈 2008. 10. 30. 12:53







극심한 혼란과 무질서,
소음과 함께 뿌옇게 불어오는 사막 먼지와 함께
고대에서.. 훌쩍 뛰어넘은 현대,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가 혼재된 카이로는 분명 카오스의 세계이다.

그러나 카오스란, 늘 새로운 질서를 예비해 두는 법!
정돈된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씩씩한 모험가가 되어
뒤엉켜 돌아가는 혼란 속에 훌쩍 뛰어들어 나를 맡겨본다.
어쩌면 또 새로운 내가 탄생되어 올지도 모를 일...
자연의 질서란 그렇게 새롭게 새롭게 해석되어져야 할
숨겨진 보물 같은 것일테니까..








유럽 등지를 다니며
몸에 익은 질서의식과,
어느덧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나라에서의
잘 진열된 상품같은 마음가짐이
이내..경계경보가 해제된 도시처럼,
아니면 막~ 공습경보가 울린 그 시각처럼
쿵쿵대고, 시끌벅적 울리며 다가왔다.






잠시 들른, 작지만 세련되고 고급스런 두바이를 경유해서
이집트 공항에 내려서면서 부터.. 알지못할 가벼운 흥분이 몰려오고
너무 지저분해서 손잡이를 잡을 엄두도 안나는
카이로 도심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회색빛 건물들과 황량하기 짝이없는 무채색의 카이로를 내다보며
이집트가 나일강 문명지라는게 도대체 믿기지지 않았지만
이 지저분하고, 신뢰성이 안가는 카이로에서의 새로운 모험에
여행자로서의 호기심이 반짝반짝 발동하기 시작한다.






예약해 둔 호텔에 들어서자
박물관에서나 찾을 법한 삐걱거리는 낡은 엘리베이트에 폭소가 터지고 말았다.
물론, 별 두개짜리 저렴한 호텔이긴 했지만 책자에 소개 된 곳이라
기본은 갖추었으리라.. 상상은 보기좋게 어긋나고
여긴, 이집트야..라고 속삭이기엔 공동 욕실 또한 너무 낡아서
결국은 좀 더 가격을 지불하고 다른 호텔로 장소를 옮겨야했다.






박물관이랑 다른 유적지에 들어가는 입장료가 비싼 관계로
입장료나 기찻값의  50%가 할인되는 국제교사 자격증을 발급 받기 위해
서둘러 짐을 풀고 전철을 탔다.

낯선 동양인들이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든지
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킥킥거리며 서툰 영어로 말을 걸어온다.
영어 안내 방송도 없고, 대충 책자에 소개된 대로 지하철을 내리니
거리 간판엔 영어표기도 찾아보기 힘들고, 심지어 숫자도 아라비아 숫자가 아닌,
아랍어 숫자로 표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길을 묻는 우리에게 친절하게 가르쳐 준 사람들은
엉터리로 우리를 안내하는 바람에
빠른 걸음으로 20분이면 찾을 그 곳을, 2시간이나 걷게 만들었다.








히잡을 수줍게 두른 젊은 여성들이
긴 스커트 속으로 청바지를 입는 게 유행인 모양이다.
서구의 문명은 젊은이들에게 가장 먼저 파고든다.
아랍권 중에서도 친미 경향을 가장 많이 보이는 이집트는
다른 아랍권 국가의 눈총을 받는다던 신문 칼럼이 문득 생각났다.






밤을 새워 두바이를 경유해서 날아와서,
쉬지도 못하고 거의 뛰다시피
카이로 골목을 뒤져 국제교사 자격증을 발부받고 나니
몸은 거의 파김치가 되어, 카이로 박물관에 들어서기도 전에
눈에 생기도 잃어버리고 호기심도 사라져서
그저 앉을 곳만 찾고픈 생각 뿐이었다.








그 유명한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들로 채워진 카이로 박물관...
책자나, T.V 매체로 많이 접해 본 것들이라...
또 너무 지친 상태여서 대충 둘러볼 예정이었으나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서 채 5분이 지나지 않아서
어디서 흘러나오는 힘인지 알 수없는 생기가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했고
입에서는,
고대 문명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에 감탄사가 나도 모르게 흘러 나와
가슴은 이내 감동으로 물결쳐서
작은 희열이 내 몸을 감싸 오르기 시작한다.






4000~5000년 전의 역사와의 만남...
이제 그 감동의 포문을 열었을 뿐이다.

희뿌연...카이로를 뒤덮는 사막먼지의 서걱거림도,
황폐한 회색건물과 거리들도,
눈뜨고 당하는 알리바바와 도둑같은 사기도,
발 내딛는 곳마다 손 벌리는 거지근성도
이제 겨우 만난 이집트 문명 앞에서는
미풍처럼 스치는 가볍고, 유쾌한 농담에 불과했을 뿐이다./세헤라자데







Autumn Slumber / Fariborz Lach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