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춘화의 노래 가사처럼 월출산 위로 달이 뜰 때, 달맞이는 참 좋습디다. 월출산이 참 영험한 산이거든요. 저는 스무 번 정도 올라가 봤습니다. 여기서 보면 뽀족뽀족하니 좀 거북스러운데 올라가 보면 한없이 아늑하단 말입니다. 바위하고 바위사이에 길이 착 나있어서 사람 마음을 포근학데 해요. 멀리서 보면 뽀족한 바위덩어리가, 가까이 보면 둥글둥글하단 말입니다. 참 신기해요. 그래 영엄한 바위가 많다고 해서 영암 아니겠습니까? -도갑사 월우(月友) 주지스님-
▒ 한반도에 영암이 먼저 있었네! 왕인 유적지, 구림마을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해남현은 없었다. 영암 아래 남도 땅은 모두 영암현에 속했다. 고대로부터 영암이 남도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월출산 줄기 문필봉 기슭에 자리한 왕인 유적지에 가면 이곳이 왜 남도의 중심인지 짐작할 수 있다.
월출산을 등지고 너른 간척지를 내다보는 성기동(成氣洞)은 사철 볕이 따사롭고, 모진 바람도 이곳에 들면 얌전히 수그러든다. 월출산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은 이곳에서 성천(聖泉)을 이루는데, 그 아래로 민가가 자리한다. ‘이런 곳이니 인걸이 모이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왕인 유적지에서 서쪽으로 펼쳐진 간척지를 따라 들어가면 약 2,2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구림마을을 만난다. 이곳은 백제 때 일본에 한자와 유학을 전한 왕인(王仁)과 풍수지리의 시조 도선(道詵)의 탄생지다. 구림(鳩林)이란 한자 그대로 ‘비둘기마을’이다. ‘아버지 없이 태어난 도선은 큰바위가 있는 대숲에 버려지는데, 비둘기 떼가 몰려와 도선을 감싸고 보호했다’는 설화가 전한다. 실제 마을 한가운데에는 설화의 단초를 제공하는 시커먼 바위가 시골집 처마 높이만큼 솟아 있다.
특이한 점은 바위 표면에 아이 주먹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멍이 촘촘히 뚫려 있다는 것이다. ‘이 바위에 구멍을 뚫고 소원을 빌면 큰 인물을 잉태한다’는 설화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풍수의 대가, 도선이 하늘의 도움을 받은 곳이다 보니 그런 바람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 바위에 오르면 월출산 남쪽에 우뚝 솟은 문필봉과 주지봉이 보인다. 이 두 봉우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이 마을이 풍수상 길지임을 알 수 있다.
구림마을은 마을 전체가 박물관이다. 한손 한손 쌓은 흙담이 아직도 남아 있고, 담장 너머로 소박한 남도의 고택이 자리한다. 한순간에 타임머신을 타고 2,000년이 넘는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듯하다. 또 구림마을에는 500년이 넘게 이어져 내려오는 향약 형태의 주민 자치 조직인 대동계가 유명하다. “혼사 때 구림 대동계원이면 내력을 묻지 마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역사와 전통에 자부심이 강하다. 세자가 지방을 시찰할 때 쉬어 갔다는 회사정은 이제 여행객의 쉼터가 되고, 대동계의 본산인 한옥 건물은 민박으로 쓰인다.
▒ 청동기부터 현재까지 영암도기문화센터 구림마을 한가운데는 폐교를 개조해 만든 영암도기문화센터가 있다. 폐교였다고 여기기 어려울 만큼 깔끔한 주변 환경과 단아한 내부 시설, 잘 꾸며진 전시 공간은 폐교를 이용한 문화 시설 중 전국에서 으뜸이라 할 만하다.
구림마을은 영산강 물줄기를 따라 바닷길이 열렸던 곳으로, 일찍이 청동기와 철기 문화가 유입되어 고대에는 중국과 일본의 교역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구림 가마터는 통일신라시대에 한반도 최초의 시유 도기(유약을 발라 제작한 도기)를 생산한 곳으로, 우리나라 도기 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986년부터 20년에 걸쳐 가마터를 발굴하고, 이를 토대로 매년 흙과 도기를 주제로 한 전시회를 개최한다. 영암도기문화센터에는 우리나라 도기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전시실과 영암의 붉은 황토를 이용해 손으로 빚어 만드는 영암 도기 생산 공방이 있다. 특히 긴 복도를 가득 메운 ‘영암 도기 연혁표’를 보면 청동기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영암 도기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번 왕인문화축제 기간과 매주 일요일, 공휴일에는 전통 공방인 고금당에서 옹기 제작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또한 이미 명품으로 인정받는 장작 가마 ‘영암요’에서 생산되는 다기 세트와 다완도 구입할 수 있다.
●061-470-2556
▒ 둥글고 펑퍼짐한 차밭 순 우리 차밭 ‘화장기’ 없는 차밭을 둘러봤다. 영암군청 문화관광과 담당자를 만나 ‘차밭 좀 안내해 달라’고 부탁하니 웬걸, 자동차는 황톳길 논밭을 한참 달리더니 좁디좁은 저수지 둑을 건너 야산 꼭대기 근처에 올라가서야 멈춘다. 영암의 차밭이라 하면 으레 월출산 자락 경포대 차밭(태평양 다원)을 떠올리게 되는데, 전혀 의외의 장소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들판에서 멀지 않은 야트막한 백룡산(418m) 자락에 자리한 차밭은 3만5,000여 평 규모. 차밭 이랑에서는 애취기로 가지를 솎아내는 농부의 손길이 분주하다.
“차밭 모양이 둥글둥글하지 않아요? 보성 차밭하고는 좀 다르지요.” 가지치기를 하다 말고, 직원 중 한 사람이 기자에게 말을 건넨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차나무의 키가 무릎 정도밖에 되지 않고, 가지는 옆으로 뻗어 차밭 이랑이 시골 아낙의 몸뻬처럼 펑퍼짐하다. “원래 재래종은 키가 작아요. 반면 일반 다원에서 가장 많이 심는 야부기다종은 키도 크고 단위당 생산량도 많죠.”
원래 월출산 자락은 야생 차나무가 많은 곳이다. 호남다원(한국제다)은 조성된 지 벌써 30년이나 됐는데, 이곳의 재래종 차는 예전의 품종을 그대로 잇고 있다고 한다.
차밭 꼭대기에 서면 멀리 크고 작은 암봉을 인 월출산 정상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햇살에 번들거리는 푸른 찻잎과 누르스름한 들판, 월출산의 잿빛 암봉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펼쳐놓은 듯 아름답다. 그러나 이곳은 보성의 봇재 차밭처럼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여행객을 위한 안내 표지판도 없거니와 길도 찾기 어렵고 편의 시설도 전혀 없다. 차밭 꼭대기에 차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는 조립식 건물 한 동이 전부다.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곳은 아니다. 월출산을 배경으로 차밭 사진을 찍고 싶은 사진작가는 소문을 듣고 종종 찾아온다. 일단 운암리를 찾아간 뒤 ‘저수지 너머에 있는 차밭이 어디냐’고 묻는 게 가장 빠르다. 호남다원의 차는 광주 본사(062-227-7560)에 연락하면 주문할 수 있다.
▒ 영험한 기운이 서린 곳 도갑사, 월출산 여행 “내가 해남 대흥사에도 오래 있었지만, 도갑사 가람 배치는 일반 절하고는 좀 달라. 서울에 있는 경희궁과 비슷하지 않아요? 조선 초기에 수미왕사라는 분이 어명을 받들어 절을 중창했는데, 그때 절 규모가 966칸이나 됐답니다.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길이 마치 임금을 뵈러 오는 길 같지요.”
찻잔을 앞에 두고 월우 스님이 절의 내력을 소개한다. “‘갑’자가 들어가는 절이 꽤 있지요? 도갑사, 불갑사, 갑사처럼. 이 갑(甲) 자에는 미륵이라는 뜻이 있거든요, 근데 도갑사의 갑(岬)에는 뫼 산(山)이 붙어요. 갑 중에서도 가장 높다는 뜻이죠.” 명산에 명찰이 있듯, 도갑사는 등뒤에 걸출한 산을 갖고 있다.
월출산은 영암의 얼굴이다. 사방 100리 안에 큰 산이 없어 드넓은 들판에 마치 금강산을 뚝 떼어다 놓은 것 같다 하여 ‘남한의 금강산’으로도 불린다.
월출산은 신라 때는 월나산(月拏山), 고려 때는 월생산(月生山), 조선시대에는 월출산(月出山)이라 불렸는데, 구림마을에서 보면 달이 이 산허리에 걸린 듯하다고 한다.
동서로 뻗은 산줄기를 종주하려면 꼬박 하루가 걸린다. 북동쪽 천황사에서 오르는 길과 북서쪽에 자리한 도갑사에서 오르는 길, 강진 땅인 무위사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등산객이 애용하는 코스다.
구름에 걸린 구름다리를 건너고 싶으면 천황사에서 올라와 바람골계곡을 타고 사자봉 쪽으로 방향을 틀면 된다. 높이 120m, 길이 52m, 폭 60cm의 구름다리까지 올라가면 그 아찔한 높이와 절경에 절로 숨이 막힌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천천히 건너가는 스릴을 맛볼 수 있다.
아쉽게도 이른 봄이라 새싹도, 야생화도 아직 없다. 그렇다면 도갑사에서 억새밭을 지나 향로봉으로 오르는 길이 좋다. 한 시간이면 억새 평원인 미왕재에 이른다. 20년 전 산불이 나서 이 일대가 모두 민둥산이 돼 버렸지만, 그후 억새 씨가 날아들어 지금은 툭 트인 전망이 일품이다. 3만 평의 억새 평원 사이사이에서 초록 물결을 내며 일렁이는 산죽 군락은 남도의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평온한 풍경이다.
미왕재에서 능선을 타고 계속 가면 향로봉과 구정봉이다. 이곳에 서면 도갑사의 월우 스님이 말한 ‘영험한 바위산’을 만난다. 스님의 말처럼 밑에서 볼 때는 꼬챙이 같던 암봉이 둥글둥글하다. 평야 위로 우뚝 솟은 오래된 산은 물과 바람과 구름에 씻긴 인고의 세월을 담고 있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난 소담한 등산로를 따라 향로봉으로 오르는 길은 사람들 말처럼 안락하다. 굳이 천황봉 정상까지 가지 않아도 넉넉하다. 한 시간 산행 뒤 얻을 수 있는 기쁨치고는 아주 쏠쏠하다.
월출산 산책로를 따라 자리한 월출산조각공원도 가볍게 발길을 옮겨볼 만한 곳이다. 월출산의 비경인 사자봉, 매봉, 장군봉의 우람한 암봉을 배경으로 월출산과 영암의 정서를 담은 조각 작품 20여 점을 전시한다. 월출산은 구석구석 숨은 보석이 많다. 샅샅이 보려면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한다. 그러나 가벼운 마음으로 월출산을 맛보고 싶다면, 한나절 코스도 좋다. 벚꽃으로 달뜬 월출산의 봄 향기를 가득 쓸어안고 돌아올 수 있다.
▒ 월출산 등산 코스 천황사 코스 천황사지→바람폭포→구름다리→천황봉→구정봉→억새밭→도갑사 8.5km, 6시간 도갑사 코스 도갑사→억새밭→구정봉→바람재→경포대(강진) 6.8km, 5시간 경포대 코스 경포대→바람재→천황봉→바람폭포→구름다리→천황사지 5.4km, 4시간 30분 |
짱뚱어탕
기름진 갯벌이 만들어내는 천혜의 산물. 갈수록 갯벌이 사라지는 요즘 국산 짱뚱어를 맛볼 수 있는 날도 오래 남은 것 같지 않다. 짱뚱어를 뼈째 갈아 우거지된장국에 끓여낸다.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참깨 가루와 들깨 가루, 산초를 넣어 추어탕처럼 걸쭉하고 고소하다. 경인식당이 유명하다.
경인식당 ●061-462-9400 ●짱뚱어탕 7000원, 추어탕 7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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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한정식
영암은 갯벌과 산, 들판이 두루 있어 한정식을 내기에는 제격인 고장이다. 어디를 가도 남도 음식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월출산 산초(山草) 갈비’ 식당을 찾으면, 서울 사람 입맛에도 딱 맞는 한정식을 맛볼 수 있다. 불고기백반을 기본으로 간재미무침, 톳무침, 등 남도의 맛이 배어 있다.
월출산산초갈비 ●063-471-2800 ●한정식 (4인) 4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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