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취미

[경주] 칠불암에서 삼릉까지 남산 종주

조약돌의꿈 2007. 9. 5. 07:24
●여행을 떠나요●

남산에서는 바위가 곧 부처요, 부처가 바로 바위다. 따라서 그 속으로 들어감은 신라로 되돌아가는 것이요, 부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다.

따스함이 지나쳐 이제는 따가움마저 느껴지는 5월의 햇살을 받으며 봉화골의 칠불암에서 용장골을 거쳐 삼릉으로 내려가는 긴 산행에 나섰다. 굳이 이렇게 산행 코스를 잡은 건 남산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가장 짜임새 있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산행을 위해 봉화골로 가는 길가에서 신라 제21대 소지왕의 전설이 어린 서출지와 남산동에 세워진 멋스러운 2기의 삼층석탑을 만났다.

서출지에는 소지왕이 연못에서 나온 노인이 바친 서책을 통해 궁녀와 중이 자신을 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음을 알아내서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다른 지방에 있었으면 유명 관광지가 됐을 법한 장소지만 워낙 볼거리가 풍부한 경주인지라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게 아쉽다. 그리고 서출지만을 찾으려면 아무래도 봄보다는 연꽃과 배롱나무 꽃이 피는 한여름이 제격이다.

산행은 봉화골의 소나무 오솔길을 걷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저 평범한 동네 뒷산에 약수를 뜨러 가듯 가볍게 오를 수 있는 길이다. 20분 정도 오르니 우물이 나오고, 그 위로 난데없이 산죽이 터널을 이루는 가파른 돌계단이 나타났다. 본격 산행을 알리는 신호탄인 동시에 ‘이 계단 끝에 무언가 있겠는걸?’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숨을 크게 고르고 나서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에 힘을 실었다. 아니나다를까, 마지막 계단을 힘겹게 딛고 올라서니 일곱 부처가 환한 미소로 길손을 맞는다. 칠불암이다. 지나온 돌계단과 산죽 터널은 불국토로 들어가는 관문인 셈이다. 이제야 비로소 부처의 나라로 들어온 것이다.

절벽을 등진 자연 암석에 삼존불, 그 앞에 솟은 바위 사면에 네 분의 부처가 조각되었다. 칠불암이란 이름도 조각된 사면불과 삼존불을 합한 데서 붙여진 것이다. 중앙의 본존 좌상은 부조로 새겼으나 조각이 깊고 세밀해 마치 입체 조각을 보는 듯하다. 남산의 불상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떼어간 코를 시멘트로 발라놓은 것이 눈에 거슬린다. 무지한 사람의 생각 없는 행동이 신심으로 조성한 예술품에 큰 오점을 남겼다.

동쪽을 바라보는 본존 좌상을 대할 때마다 반드시 항마촉지인을 한 수인을 살피게 된다. ‘왜 항마촉지인을 한 걸까?’ 항마촉지인이란 깨달음에 이르기 직전에 악마의 유혹을 받은 부처가 지신을 가리키며 마군을 물리쳤음을 증명하는 손가짐이다. 혹, 문무왕이 죽어서 동해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고 한 것처럼, 신라인이 자신들을 괴롭히던 동쪽의 마귀, 즉 왜구를 물리치기 위한 마음의 발로는 아니었을까.


구름을 타고 경주벌을 내려다보다

칠불암 뒤로 경사가 심한 암벽길을 오르니 깎아지른 듯한 벼랑의 한쪽 바위면에 반가상의 부처가 한 분 계시다. 바위면을 얕게 파서 감실을 표현하고 그 안에 구름을 탄 듯모셔진 신선암마애보살상. 산 정상에서 경주 벌판을 굽어보는 눈길에 자비심이 가득하다. 마음이 선한 사람의 눈에는 칠불암에서 이 부처의 모습이 보인다고 하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보이지 않은 것을 보니 선덕을 쌓으라는 뜻인가 보다.

신선암마애보살상에서 능선을 따라 금오산 정상으로 향할 수도 있으나, 용장골을 거쳐 가기로 했기에 내리막길을 선택했다. 한참 내려가니 남산에서 가장 크고 깊다는 용장골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갈수기라 계곡에는 물이 많지 않지만, 물가에는 서너 명이 쉴 수 있는 커다란 바위가 눈에 띈다. 계곡의 다리를 건너 용장사지로 가는 길은 남산 최고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지나는 사람도 적고 산죽이 우거져 터널을 만든 길은 그야말로 나만의 아지트를 찾아가는 비밀의 문 같다. ‘쉬~익’ 하고 산죽에 부서지는 바람 소리며, 청량하게 지저귀는 새 소리가 그윽한 운치를 뽐낸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앉아 나무와 바람, 새들이 연출하는 자연의 오케스트라에 귀를 귀울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길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용장사는 폐허에 가깝다. 축대만 간신히 남아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예전에는 이 계곡의 주인 격일 뿐 아니라 남산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대가람이었다. 절 앞에 흐르는 계곡 이름도 용장골이고, 골짜기 어귀에 있는 마을 이름도 용장리다. 모두 용장사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금오신화>의 산실, 용장사

보기에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용장사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인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탄생한 장소다. 어린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세조)의 행위에 분개한 김시습은 전국을 떠돌았다. 그에게 왕위 찬탈은 타협할 수 없는 패륜이자 반역이었다. 동시에 의의 끝이며 불의의 시작이었다. 서울 삼각산에서 과거를 준비하던 김시습은 책을 모조리 불태우고 “남아가 세상에 나서 자기 포부를 펴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산으로 들어가 산사람 노릇이나 할 것이다” 하고는 방랑길에 올라 전국을 떠돌다가 잠시 용장사에 머물렀던 것이다. 이때 <금오신화>를 저술했다.

“용장골 깊어 오가는 사람 없네 / 보슬비에 신우대는 여울가에 움돋고 / 비낀 바람은 들매화 희롱하는데 / 작은 창가에 사슴 함께 잠들었네 / 여기에 먼지가 재처럼 깔렸는데 / 깰 줄 모르네 억새 처마 밑에서 / 들꽃은 떨어지고 또 피는데”

김시습의 <용장사>란 시를 읊조리며 올라선 길에 머리가 없는 삼륜대좌불이 기다리고 서 있다. 쟁반 모양의 둥근 대좌 받침과 대좌를 3층으로 중첩한 모습이 이채롭다. 결가부좌한 불상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몸체의 표현도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다만 머리가 사라져버린 탓에 우리를 위해 미소 짓고 있을 천 년의 미소를 볼 수 없음이 안타깝다. 삼륜대좌불 뒤 바위에는 얼굴이 풍만한 마애여래좌상이 숨은 듯 얌전하게 새겨져 있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을 마주하면 용장골의 정상이다. 산 전체를 기단부로 삼아 남산의 많은 유적 중에서도 가장 장엄한 위엄을 갖추었다. 자연의 조건을 그대로 활용해 석탑을 세운 신라인의 기지가 돋보인다. 발아래 남산의 골짜기와 경주의 너른 들을 바라보다 문득 탑까지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험한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 봤다. 헉헉거리며 오르는 숨소리에 속세의 번뇌를 다 실어 보내고, 순백의 마음으로 청정무구한 부처님의 세상으로 들게 하려는 의도가 아닐는지. 아니면 남산의 여러 골짜기와 경주를 바라보며 신라의 웅혼한 기상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신라인의 염원이 담겨 있을 게다.

천 년을 늙어도 잃지 않은 미소

용장사지 삼층석탑을 지나면 금오산 정상이 지척이다. 산정은 그저 산행에 지친 나그네가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장소일 뿐 특별한 무엇은 없다. 이제는 삼릉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이다. 바윗길이 아닌 부드러운 흙길이라 발걸음도 한결 가볍다.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하산을 재촉하는데 커다란 불상이 조각된 절벽이 눈에 들어왔다.

상선암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이라 이름 붙여진 불상이 저 멀리 인간 세상을 살피고 있는 중이다. 높이가 무려 5.2m에 달하는 마애불로 남산의 불상 중 규모나 조각의 우수성 면에서 가장 월등한 작품이다. 행여 잘못될세라 목을 쑥 내밀고 인간 세상을 바라보는 부처의 멋들어진 미소에 감탄하며 잠시 평안에 잠긴다.

마애불 아래 상선암에 들러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이고 석조여래좌상으로 향했다. 잠시 걷다 이정표를 따라 등산로를 조금 벗어나니 건장한 체구의 부처가 앉아 있다. 머리가 온전하게 붙어 있는 부처의 뒷모습에 왠지 모를 고마움이 느껴진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정면으로 보이는 부처의 얼굴 아랫부분이 시멘트로 보수되어 있다. 부드럽고 자비로워야 할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보기 흉한 몰골이다. 차라리 그냥 두었더라면 세월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었을 것을. 문화재의 가치와 복원에 무지한 결과가 훌륭한 문화 유산에 먹칠을 한 셈이다.

석조여래좌상에서 위로 300m 정도 올라가면 높이와 너비가 각각 10m 정도 되는 절벽 중앙에 선각여래좌상이 있다. 선으로 표현되어 입체감이 부족하고, 얼굴의 표현이 둔탁해 부처의 위엄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산행을 하면서 봐 온 부처의 얼굴과 확연히 다른 것을 감안하면, 아마도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씁쓸한 마음으로 500m 정도 더 내려가니 선각으로 된 근사한 육존불이 모습을 드러냈다. 병풍처럼 들어선 바위 앞에는 아미타삼존불을, 뒤에는 석가모니삼존불을 새겨놓았다. 원래 마애불은 정으로 쪼아 새기지만, 이 불상은 붓으로 그린 것 같다. 마치 붓으로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음각한 솜씨는 신라의 회화 예술을 보는 착각이 들게 한다. 불교에서 아미타불은 죽은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부처이기에 등산객은 이곳에 잠시 멈춰 서서 극락에 가기 위해 연신 허리를 구부려 108배를 한다.

그 밑으로 환한 미소를 가득 머금고 금방이라도 하강할 것 같은 마애관음보살상과 머리가 없어지고 두 무릎이 파손되었지만 자연스러운 옷 주름과 섬세한 매듭으로 당시 스님의 복장을 알 수 있게 하는 목 없는 석불좌상을 지나니 소나무 숲이 우거진 삼릉이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삼릉이지만 소나무 숲 하나만은 일품이다. 고요함이 흐르는 정적인 분위기가 좋다. 코끝에 와 닿는 솔 향도 무척이나 상쾌하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산에다 자신의 불심을 쏟아부었기에 이토록 거대한 불국토를 이룩했을까? 마음 하나에서 돌에 생명을 불어넣는 정성스러운 손짓에까지 신라인의 혼이 온 산을 감싸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남산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청량하게 흩어지는 산새 소리와 영롱하게 빛나는 햇살도 신비롭게 다가오고, 소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도 “원왕생 원왕생” 하는 신라인의 축원으로 귓가에 들려온다.
▒ Tips 남산 추천 산행 코스
1. 동남산 산책
부처골 감실여래좌상→탑골 마애조상군→보리사 석조여래좌상→미륵골 마애여래좌상→헌강왕릉→정강왕릉→통일전→서출지→남산동 쌍탑
2. 칠불암을 거쳐 천룡사로
통일전→서출지→남산동 쌍탑→염불사지→칠불암 마애조상군→신선암 마애보살유희좌상→용장계 못골 모전석탑→백운암→천룡사지 삼층석탑→와룡사→틈수골
3. 포석정에서 금오정으로
포석정→순환도로→윤을골 마애여래삼체불→부엉골 마애여래좌상→부흥사→늠비봉 오층석탑→절터→금오정(전망대)→상사바위→순환도로→하산
4. 약수골에서 금오산으로
약수골 어귀→대석단 절터→석조여래좌상→마애대불→선방터→능선길→금오산
5. 자전거 코스(①서남산)
대릉원→천관사지→오릉→나정→일성왕릉→남간사지 당간지주→창림사지 삼층석탑→포석정→배리삼존불→삼릉→경애왕릉
6. 자전거 코스(②동남산)
대릉원→인용사지→상서장→부처골 감실여래좌상→탑골 마애조상군→보리사 석조여래좌상→미륵골 마애여래좌상→헌강왕릉→정강왕릉→통일전→서출지→남산동 쌍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