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이 전립선암과 유방암에 좋다
국립암센터는 매년 우리나라 국민의 암 발생 빈도를 조사하여 발표한다. 2012년 12월 발표한 암 발생 통계(2010년 기준 자료)에 의하면 유방암은 여성 암 중에서 2위(45.4%), 전립선암은 남성 암 중에서 5위(23.3%)를 차지했다. 최근 10년 동안 이 두 가지 암 발생률은 증가 추세다. 유방암은 연평균 6%P, 전립선암은 연평균 12.6%P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서구의 경우 두 가지 암 발병률이 이미 오래전부터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해 오고 있다.
서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던 유방암과 전립선암 발병률이 최근 들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까닭이 뭘까.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유방암이나 전립선암이 쉽게 발생하도록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전자가 변이를 일으킨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서구 사람들에게 흔하던 암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도 쉽게 발병하자 불안해하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 많은 여성이 ‘주변에 유방암에 걸린 사람이 왜 이렇게 많지? 나도 유방암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고, ‘유방암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까?’ 궁금해한다. 이들은 종양 분야 전문가들이 권고하는 예방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미 상당한 정보를 수집,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을 갖춘 이도 상당수다.
필자는 이전에도 비슷한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만약 어떤 특정 암의 발생률이 갑자기 증가했다면 그에 따른 원인이 있을 것이고, 그 원인을 교정해 주면 특정 암의 발생률도 감소할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기십 년 사이 우리의 DNA가 변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우리 몸속의 세포들이 처한 환경은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와 달리 암세포로 변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변화된 것 중 우리 몸에 나쁘게 작용할 만한 것들을 바로잡아 주면 암세포로 변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
필자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대표적인 예가 흡연에 의한 폐암 발생이다. 최근 들어 흡연 인구가 줄면서 폐암 발생률이 줄고 있다. 폐암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원인 중의 하나가 흡연이란 사실을 알게 된 후 금연 운동을 통해 폐암 발생률이 줄었듯이 다른 종류의 암 역시 그 발생률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완전식품’이면서 ‘항암식품’
필자는 지난 호에서 겨자류 채소의 항암효과에 대해 설명했고, 가능하면 꾸준히 일정한 양을 먹을 것을 권장했다. 이번 호에서는 콩의 항암효과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영양학적으로 ‘완전식품’인 콩은 ‘항암식품’이기도 하다. 특히 유방암과 전립선암에 효과가 큰 것으로 여러 임상을 통해 밝혀졌다.
콩에는 에스트로겐이라는 여성 호르몬과 매우 비슷하게 생긴 물질이 함유돼 있다. 유방암과 전립선암은 성(sex)호르몬에 자극을 받는 대표적 종양이기 때문에 콩 속에 함유돼 있는 특정 성분에 의해 항암작용이 나타난다.
암세포의 일반적인 특징 중 하나는 급속하게 증식하기 위해서 세포 표면에 다양한 수용체, 즉 일종의 안테나를 몇십 배에서 몇백 배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때문에 세포 밖의 자극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것이겠지만 필자는 콩을 생각하면 ‘콩밥’이 먼저 떠오른다. 어린 시절 필자의 어머니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 콩밥을 짓곤 했다. 반면 아버지는 ‘죄를 지으면 감옥에서 콩밥을 먹는다’는 말로 어린 자식들의 잘못된 행동을 꾸짖곤 했다. 그 때문인지 콩밥을 먹을 때면 감옥에서 콩밥을 먹는 죄수의 모습이 떠올라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대학 시절 친구가 우연히 시위 현장을 지나다 시위 학생으로 오해를 받아 영등포 경찰서에 잡혀간 적이 있다. 붙들린 학생이 너무 많아 친구는 이틀 밤을 꼬박 경찰서 구치소에서 보내고 나서야 혐의가 없는 것으로 확인돼 겨우 풀려났다. 필자를 비롯한 친구들은 “잡혀갈 사람은 따로 있는데 내가 왜 잡혀서 고생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해하는 그 친구에게 농담 삼아 “구치소에서는 정말로 콩밥을 주더냐”고 물은 기억이 난다. 당시 그 친구는 “콩밥이 아니라 꽁보리밥을 주더라”고 답했고, 우리는 모두 박장대소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감옥은 콩밥을 주는 곳’이라는 인식이 언제부터 정착되었는지 알 길은 없다. 다만 수감자에게 콩밥을 주었던 이유와 출소 후 두부를 먹이는 이유 중의 하나는 콩 속에 있는 양질의 영양분 때문이 아닌가 싶다.
쌀이 주식(主食)인 경우 쌀에 없는 영양분을 곡물에서 보충해 주기 위해서는 혼식(混食)을 해야 한다. 이럴 때 영양소가 풍부한 콩은 가장 이상적인 곡물 중 하나이다.
식물성 호르몬 이소플라본
콩은 단백질(35~40%), 지방(15~20%), 탄수화물(30%)로 구성돼 있으며, 식이섬유, 비타민(비타민 B1, B2, 니아신 등), 무기질(칼슘, 인, 철, 나트륨, 칼륨 등), 식이섬유 등이 풍부한 영양식품이다. 콩에 많은 단백질에는 식물성 에스트로겐인 ‘이소플라본(isoflavone)’이 다량 함유돼 있는데, 이 성분이 항암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 《미국임상영양학회지》에 보고된 연구논문에 따르면 거의 1만명에 가까운 유방암 환자들 중에서 하루에 이소플라본을 10mg 이상 섭취한 경우 유방암의 재발이 25%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소플라본은 전립선암 등 호르몬에 영향을 받는 암의 발생을 막는 특징이 있다. 일본에서 발표된 임상연구에 의하면 폐암에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소플라본이라는 물질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항암효과가 큰 것일까.
이소플라본은 식물 속에 존재하는 호르몬 유사 물질로, 피토에스트로겐(phytoestrogen)이라 일컫는다. 여기서 ‘피토’는 그리스어로 식물을 의미한다. 에스트로겐과 이소플라본의 화학구조식을 비교해 보면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이 두 가지 물질의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에 에스트로겐이 에스트로겐 수용체에 결합하여 작용할 곳에 이소플라본이 대신 결합하여 에스트로겐의 작용을 막을 수 있다.
암세포 중에는 세포 표면에 호르몬과 결합할 수 있는 호르몬 수용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호르몬 수용체를 가지고 있는 암세포는 호르몬이 있을 경우 생존이 활성화되는 자극을 받는다. 따라서 호르몬이 암세포를 키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암세포들에서 만약 호르몬의 자극 요인을 제거한다면 암세포들은 생존 자극 신호가 줄어들어 죽을 수도 있다.
이소플라본이 항암효과를 나타내는 이유는 다양하게 제시되어 왔다. 우선 항산화 효과가 있어 우리 몸 안에서 생성되는 활성산소종에 의해 유발되는 정상세포의 DNA 손상을 막아 암세포의 발생을 억제할 수 있다. 또한 암 발생 유전자(oncogene)에 의해 만들어지고 암세포 발생에 관여하는 티로신 프로테인 키나제(tyrosine protein kinase)라는 효소의 작용을 막음으로써 항암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일본서 임상시험 결과 발표
집그런데 이런 이론적인 부분은 학자들의 몫이고 일반 국민들이 알아야 하는 사실은 항암효과가 과장된 것은 아닌지, 효과가 있다면 어떤 사람에게 좀 더 유용한 것인지 등일 것이다. 그리고 과학적인 근거가 충분하다면 일상생활에서 매일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고기를 먹는 것이다. 하지만 고기를 먹을 경우 지방 과다 섭취로 고지혈증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걱정과 부담이 있다. 이럴 경우 고기 대신 콩 음식을 먹으면 된다. 콩 속에 포함된 지방은 오히려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콩 지방에 함유된 리놀산과 올레인산 때문이다.
콩은 흔히 접하는 곡물인데 이상적인 효능을 갖고 있다고 하니 왠지 신뢰감이 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진리는 평범함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흔한 먹을거리가 기적을 일으킨다는 믿음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콩은 이미 기원전 2700년경에도 재배했던 작물로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이 점으로 보아 인류가 콩을 먹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 콩이 언제 전래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콩의 원산지가 만주지역인 것으로 추측되는 만큼 중국과 거의 같은 시기이거나 그 이전부터 먹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시대에 된장을 먹은 기록이 있다. 검은콩과 붉은 팥은 샤머니즘 의식에서도 쓰이므로 콩은 우리 민족의 의식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곡물이란 생각이 든다.
만약 우리 민족이 콩을 먹은 역사가 오래되었다면 콩에 대한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우리 민족은 콩이란 곡물을 먹어서 영양소를 섭취하고 건강을 유지해 오도록 오래전부터 적응되었다는 점에서다. 주식으로 먹는 곡물 중에서 콩이 빠진다면 건강을 유지하는 밸런스가 깨질 가능성이 높고, 그럴 경우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假說)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콩 속에 존재하는 이소플라본의 항암효과에 대한 연구는 이제 호르몬에 영향을 받는 암뿐 아니라 폐암에까지도 확장되고 있다. 일본 내 수십 곳의 대형병원이 참여한 임상연구에 의하면 이소플라본을 섭취한 폐암 환자들의 치료 성적이 그렇지 않은 환자들보다 우수한 경향을 보였다. 이 임상연구 보고서는 확실하게 통계적으로 생존율이 증가했다는 결론은 도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재발 확률을 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항암치료 후 콩 음식 효과
콩으로 만들거나 콩을 재료로 쓰는 음식은 참으로 많다. 두부, 된장, 간장, 청국장, 콩국수, 콩죽 등. 암환자들은 항암제 투여를 받거나 방사선 치료를 받으므로 소화력이 떨어지고 식욕이 감소한다. 특히 두경부암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게 되면 구강 점막이 손상되어 매운 음식은 전혀 먹을 수가 없다.
필자는 방사선 치료를 받고 회복기에 있는 환자들에게 “이제부터 먹는 것을 잘 드시고 항암치료로 손상된 건강을 하루빨리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환자들은 “잘 먹어야 하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아 너무나 괴롭다”고 호소하곤 한다. 한식에는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 거의 없는데 고춧가루 하나만 들어가도 입속에 불이 난다는 것이다.
이런 환자들에게 필자는 콩죽이나 콩국수를 먹도록 권장한다. 콩죽이나 콩국수는 향이 강하지 않아 먹기도 비교적 편하고 영양분도 많은 장점이 있다.
얼마 전 《월간조선》에 두부 관련 기사가 실렸다.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두부는 기본적으로 맛이 없는 ‘무미(無味)음식’이다. 사람의 미각(味覺)은 단백질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두부에서 맛을 느낀다면 아마도 물이나 간수 속에 있는 아주 소량의 미네랄 때문일 것이고, 두부에 존재하는 단백질의 일부가 아미노산으로 분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되었든 두부 자체의 맛이란 것이 있기는 하지만 맛 자체가 자극적인 것이 아님에는 분명하다.
두부를 술에 비유한다면 보드카가 아닐까 싶다. 보드카는 다른 음료나 술과 섞일 때 그 맛을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모 언론사 기자가 보드카와 테킬라를 비교하면서 ‘테킬라가 탕이라면 보드카는 지리’라고 표현했는데, 꼭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보드카가 칵테일의 베이스 역할을 잘 하듯이 두부도 다른 음식의 맛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어디에 들어가도 그 음식 특유의 맛을 잃지 않으면서 두부 맛을 낸다. 불고기 양념에 불고기와 같이 졸일 수도 있고 매운 양념에 조림을 해도 맛이 좋다. 모든 국물이 있는 요리에 두부가 들어갈 수 있는 것도 두부가 지니는 특징일 것이다.
두부 외에 된장, 청국장, 콩나물, 두유 등 콩을 재료로 한 음식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콩에 많은 이소플라본은 어떤 요리로든 항암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먹는 것에 제한이 많은 암환자라면 영양공급을 위해 콩을 재료로 한 음식을 많이 먹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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