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취미

옛 사문진 나루터를 다녀오다.

조약돌의꿈 2017. 9. 27. 06:22

 

☆사문진 나루터를 다녀오다☆ (대구 달성군 화원읍 화원동산부근2017.9.22(금)

 1. "옛 사문진" 나루터의 유래
      이 나루터는 화원읍 본리리에  있던 인흥사(仁興寺) 라는 큰 절로 가는 관문이기에 절사(寺) 

      자를 써서 사문진(寺門津) 으로 불렀다는 설과

      "강가에 모래가 있어서" 모래 사(沙) 자를 쓰고 포구로 배가 소금을 싣고 들어 오고 또 대구

      지역의 산물 이 다른곳으로 가는 관문이라고  해서 사문진(沙門津)으로 불렀다는 설이 전해

      오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아래의 설에 의한 사문진(沙門津) 으로 쓰고 있다.

     사문진은 낙동강의 대표적인 나루터로 조선 세종28년에 설치돼 성종때 까지 무역창고가

     (화원창)있었고,  보붓상들과 소금를 실은 배가 부산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대구로 오는 뱃길에

     있던 나루터 였다.
     내가 알기로는 옛날, 부산에서 소금과 물건을 실은 배가 낙동강을 거슬러 안동까지 오르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

 
2."임자없는 나룻배"의 촬영지
    사문진 나루터를 배경으로한 항일의식이 담긴 무성 영화로 나운규의 아리랑과 함께 리얼리즘
     계열의 우수작으로 평가되고있다.
     대구출신 영화감독 이규환이 1932년 9월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한 영화 "임자없는 나룻배"의

     촬영지 이기도 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춘삼은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서 인력거를 끌며 살다가 가난을 이기지 

     못해 도적질을 하다가 감옥에 간다.

     옥살이를 마치고 나와보니  아내의 부정을 알게 되어 결국 하나 밖에 없는 딸과 함께  고향으로 

     내려와 이곳 사문진 나루터에서 사공으로 살다가 결국 한많은 생을 마감하고 딸 역시 불에 타 

    죽는 등 내용을 상세하게 다 옮길 수 없지만 일제에 항거하는 내용이 담긴 항일 영화이다.

3. 국내 최초 피아노 유입지
     1900년3월에 대구지역 선교사로 부임한 사이드 보텀(사보담) 부부가 한국최초로 피아노를 

     배편으로 실어와 이곳 사문진 나루터에서 내려 짐꾼 20여명이 사흘간 대구 약전골목 선교사 

     자택으로 옮겼으며 당시 사람들은  피아노 소리를 듣고 소리통, 귀신통이라고도 하였단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2012년부터 달성군 개청100주년을 맞아 100대의 피아노 콘서트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올해도 유명 지휘자 금난새 지휘로 콘서트 준비에 분주하다.

※ 내가 대구에 정착하였을 때만해도 (1978년) 나룻배가 다녔으며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수많은 짐과 

    심지어는 버스, 화물차  까지도 현대화된 나룻배를 이용하여 강을 건너 다녔다.
   특히 장마철 홍수로 물이 불어나면 나룻배가 다닐 수없었고,  또한 이 나루터는 수많은

   이별과 만남의 애환이 서린 나루터로 오래도록 기억 될 것이다.
   지금은 오가는 다리가 두개나 놓여 있어서 나룻배가 다니던 시절을 살아온 나로서는

   (1980연대초)격세 지감이 아닐 수없다.
   
   화원동산 입구에서 낙동강 쪽으로 불과 200m 정도 가면 옛 나루터에 이른다.
   지금은 유람선과 쾌속정이 관광객을 맞으며, 옛스러운 음식에 접할 수있는 식당도 있다.
   4대강 사업으로 강의 수심이 7~14m에 이른다고 한다.
    
   쾌속정도 타고 모처럼 재밋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 왔다.   

   "사뭇진 나루터" 노래를 흥얼거리고,  옛 나루터를 머리에 떠올리며~~~

 

 

 

 

 

 

 

낙동강 나룻배

 

 

쾌속정 을 타고